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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을 의도대로 사용하지 않는 고객

그냥 좀 고객이 원하는 걸 드리란 말입니다!

열심히 만든 제품에 유입된 고객이 기존에 설계했던 유스 케이스 (use case)를 이탈해 전혀 다른 방법으로 제품을 사용하고 있다면, 제품 팀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고객의 손에 고객이 원하는 것을 쥐여줘라. 고객이 직접 나서서 Product Market Fit을 찾아준다는데, 그걸 마다할 것인가? 고객이 우리의 의도대로 하지 않는다고 Use case를 제한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제품의 무한한 가능성에 cap을 씌우는 것과도 같다.

0/ 노션을 의도대로 사용하지 않는 고객들

며칠 전 미디엄에서 흥미로운 글을 하나 읽었다. JIRA+Confluence의 조합의 새로운 대안이자 협업을 완성시키는 슬랙의 보완재이며 동시에 에버노트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노트로도 떠오르고 있는 생산성 툴인 노션(Notion)은 협업 도구이지, 자료를 정리하는 도구가 아니라는 점과 지금 일부 사용자들이 노션 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Use Case를 만들고 있으며 이것은 딱히 노션 팀이 좋아할 만한 현상은 아닐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사용자들이 노션의 의도대로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노션에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노션 화면 GIF)

특히 국내 유저들이* 노션을 협업, 문서 작성, Wiki/Knowledge Mgmt 등의 용도로 사용하지 않고 개인 일정관리, To-Do 리스트, 여행 계획 관리, 독서 노트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현상이 노션에게 얼마나 안 좋은 일인지에 대한 논리를 제시했다.

*미디엄 저자분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이렇게 사용하는 유저 베이스가 있는 곳은 국내뿐만은 아니다.

저자분의 “왜 안 좋은 일인지”에 대한 논리를 정리해봤다.

1. 노션은 세쿼이아, First Round Capital 등 유명 씨드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고 있는 회사이며 이런 VC의 투자를 받은 이상 “단기간 그리고 일정 기간 내 매출, 손익, 성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스타트업이 성장” (직접 인용) 하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2. B2B 기업들의 유저 베이스를 늘리고 원래 의도인 협업을 통해 가치를 창출해야 다음 라운드 때 명확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3. 따라서 투자자의 입장에서도 국내외 유저들이 개인적인 용도로 노션을 사용하는 것은 원하는 결과가 아니다.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고 있고, 어떻게 보면 일리 있는 글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내 생각에는 스타트업, 그리고 특히 소프트웨어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 글에 강하게 반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위험한 이유는 이제 막 자라나고 있는 새로운 스타트업들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제한하게 되는 생각의 발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협업,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생산성 분야에 있는 팀들은 (노션과 마찬가지로) 고객이 고객의 입장과 입맛에 맞게 사용할 수 있게끔 제품을 어느 정도 유연하고 자유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고객이 제품을 사용하는 것을 측정하고 모니터 하면서 고객의 실제 니즈와 정말로 해결하고자 하는 내재적 문제 (underlying problem)를 확인할 수 있다. 고객이 원한다는데, 게다가 돈도 준다는데, 고객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게 막을 것인가?

 

미디엄 글의 주장이 왜 반-제품적인 사고방식이고 제품 팀에게 굉장히 위험한 이야기이며, 또한 벤처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주장인지 알아보자.

 

1/ VC는 단기간 매출, 손익, 성장 확대하는 방향으로 스타트업이 성장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제대로 된 VC라면 말이다. 노션에 투자하고 있는 세쿼이아와 First Round가 유명한 이유는 전설적인 엑싯뿐만 아니라 투자하는 파운더들의 비전을 믿어주고 그들이야말로 비전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들이며 만들고 있는 각 제품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임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쿼이아와 First Round와 같이 제대로 된 VC라면 단 기간 내 결과를 바라지 않는다. 단기간 성과를 목표로 움직이는 팀은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그 팀이 잘 되기를 바라는 VC는 단기간 성과를 목표로 제안하지 않는다.

또한 VC는 만약 고객이 마음대로 제품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매우 좋아할 것이다. 자신이 투자한 회사의 제품이 어떤 특정 고객층에게 먹힌다는 얘기인데, 이러한 희소식을 마다할 VC가 어디 있겠는가?

2/ 고객이 의도된 Use Case에 따르지 않는 현상은, 사실 매우 좋은 현상이다.

이 부분에 대해 실리콘 밸리 프로덕트 그룹 (Silicon Valley Product Group)의 대표이자 eBay, HP 등에서 제품 매니저로 오래 일했던 마티 케이건 (Marty Cagan)은 이렇게 말한다.

“Allow and even encourage, our customers to use our products to solve problems other than what we planned for and officially support.”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이 알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허용하고 더 나아가 격려해주세요. 설령 우리가 의도하지 않았고 공식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 방법이라도 말입니다.” (- 저서 인스파이어드 중에서) *

*최선을 다해 번역해봤다…

eBay에서 제품 & 디자인 임원(SVP of Product & Design)으로 일했던 <INSPIRED> 저자 마티 케이건의 말에 따르면 초창기 eBay에는 늘 “그 외 모든 것들” (Everything Else)이라는 카테고리가 있었다고 한다. eBay의 제품 팀이 생각하지도, 상상하지도 못한 것 들을 사고파는 사람들은 늘 존재했고 “그 외 모든 것들”에는 정말 엄청나게 다양한 품목들을 취급하게 되었지만, eBay에서의 가장 큰 혁신은 항상 고객들이 정말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자세히 모니터링하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얘기했다.

(eBay 홈페이지 화면)

eBay의 제품 팀은 고객들이 의도대로 제품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놔두었고, 그렇게 하도록 격려했다. 그 결과, 초기 전자제품이나 골동품들을 위한 마켓 플레이스로 만들어진 eBay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콘서트 티켓, 미술품 등을 거래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자동차를 거래하기도 했다. 오늘 이베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중고차 거래 플랫폼이기도 하다.

마티 케이건은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면서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Some product people can get upset when they find customers using their products for unintended use cases… I’m suggesting, however, that this special case can be very strategic and well worth the investment to support. If you find your customers using your product in ways you didn’t predict, this is potentially very valuable information.”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 중 일부는 고객이 의도한 대로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화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제안 드리고 싶은 것은, 사실 고객이 의도한 대로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굉장히 전략적인 일이 될 것이고 또한 그 고객을 지원하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당신의 고객이 당신의 제품을 의도치 않은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정보는 굉장히 귀중한 정보입니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고객이 원하는 것을 쥐여줘라. 그것이 설령 우리가 설계하고 기획했던 방향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우리가 설계하고 기획했던 방향은 사실 고객이 인정해주기 전까지는 프로토타입에 불과하다. 프로토타입이 지속해서 발전하고 부족한 부분을 개선한 뒤 제품이 되기 위해서는 고객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 고객의 인정은 어쩔 땐 사용 빈도로, 돈으로, 또는 우리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나타난다. 이 과정을 실리콘 밸리 용어로 말하면 Product Market Fit을 찾는 과정이다. 고객이 직접 나서서 Product Market Fit을 찾아준다는데, 그걸 마다할 것인가? 고객이 우리의 의도대로 하지 않는다고 Use case를 제한하는 것은 스스로 자기 제품의 무한한 가능성에 cap을 씌우는 것과도 같다.

 

다만,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제품이 성장할수록 분명 쓰고 싶은 대로 쓰려는 유저의 타입/cohort는 다양해질 것이다. 다양한 형태로 제품을 사용하는 그룹이 많아질 때, 우리가 한가지 확실히 해야 하는 부분은 “우리가 발견한 이 유저 타입/cohort가 정말 우리의 제품을 큰 시장에서 적절한 fit을 찾아줄 수 있을까?” 일 것이다. 이 유저 그룹에 집중하면 우리 제품이 크게 성장할 수 있을까?

 

링크드인을 공동창업한 리드 호프만 (Reid Hoffmann)은 링크드인 역시 초창기에 원래 의도한 use case 외에 다양한 방법으로 제품을 사용하고 있는 유저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중에는 “LION”이라는 유저 그룹이 있었는데, LION은 LinkedIn Open Network의 줄임말로, 링크드인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야 한다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처럼) 생각한 유저들이었다. 링크드인 제품 팀이 계속 제품을 만들고 개선하면서 알게 된 것은 사실 대부분 유저들의 생각은 정반대였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아는 사람만 추가하고 싶어 했고, 특히 유명인들과 인맥이 넓은 사람들은 그 외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으며, LION은 소수 마니아층인 것으로 밝혀졌다.

 

만약 링크드인 제품 팀이 LION의 사용 방법이 링크드인 제품을 크게 성장시킬 것이라 믿었다면, 그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의 선구자 (precursor) 정도로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인용 및 참고 도서:

“Inspired”. Marty Cagan. (영문)

내가 함께하고 있는 퍼블리에 가입하면, 위 참고 도서인 <Inspired>의 핵심만을 간추린 콘텐츠를 (한국어) 무제한으로 읽어 볼 수 있다. 위 링크를 클릭한 뒤 가입하고, ‘인스파이어드’를 검색하면 나온다. (혹은 아래 이미지 클릭)

덧붙이는 말:

미디엄 글의 저자와 논리와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이 한 권 있다. 마이크 피셔 (Mike Fisher)가 쓴 <Power of Customer Misbehavior> (고객 이탈 행동의 힘)인데, 이 책에서도 이베이와 페이스북 등의 기업들이 어떻게 고객들의 원하는 방식대로 제품을 사용하게끔 놓아주고 그것에 맞춰서 제품을 개선해나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